음식의 역사

베트남 쌀국수 포의 역사

informate 2025. 6. 16.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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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쌀국수 포의 역사

1848년부터 1883년까지 베트남을 다스렸던 투둑 왕은 궁중에 요리사 수십 명을 두고 날마다 산해진미를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투둑 왕은 서민들이 자주 먹는 쌀국수를 찾았다. 베트남 사람들은 일찍부터 쌀로 여러 가공식품을 만들었는데 쌀국수도 그중 하나로 아침마다 먹었던 음식이다. 이때의 쌀국수는 몇 가지 채소와 양념을 곁들인 비교적 단순한 음식이었지만, 투둑 왕은 진귀한 음식에 싫증 나서인지 쌀국수를 좋아하여 그날부터 자주 먹었다. 요리사 중 한 명인 응우옌은 왕의 건강을 염려해서 국물에 각종 약재를 넣어 쌀국수를 만들어 바쳤다. 투둑 왕은 새로운 쌀국수에 매우 만족해하며 응우옌에게 연꽃을 하사했다. 당시 연꽃은 베트남 왕실에서 차를 끓일 때 쓰던 꽃으로, 요리사에게 '최고 요리사'라는 명예를 준 것이었다. 뒷날 응우옌 가문은 연꽃을 문장으로 내세우며 최고 요리사 집안임을 자랑했다. 1858년 베트남을 침공한 프랑스는 1884년에 베트남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지배 계급으로 행세하며 각종 음식을 즐겼는데 그중에는 쌀국수도 있었다. 베트남 북부에 살던 한 프랑스 귀족은 베트남 요리사에게 쌀국수에 쇠고리를 얹어 만들라고 요구했다. 요리사는 망설이다가 쇠고기를 넣은 쌀국수를 만들었다. 원래 베트남 사람들은 쇠고기를 먹지 않았다. 소는 벼농사를 짓는 데 반드시 필요한 가축이어서 함부로 잡아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기를 먹고 싶을 때는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즐겨 먹었다. 이러한 때 프랑스 귀족이 쇠고기를 넣으라고 하니 잠시나마 망설였다. 그런데 요리사가 자기 요리를 점검하기 위해 살짝 먹어 보니 맛이 아주 좋았다. 또한 요리사는 살을 발라낸 뼈를 버리지 않고 국물을 우려내는 데 사용했다. 베트남 요리사는 쌀국수에 향신료를 더해 독특한 맛과 향을 냈다. 프랑스 귀족은 쌀국수를 '불처럼 뜨거운 그릇'이라는 뜻에서 '포토푀'라고 불렀다. 이후 프랑스 귀족 사이에서 포토푀는 뜨거운 별미 수프로 여겨졌고, 북부 베트남 사람들은 그럼 쌀국수를 간단히 '포'라고 부르며 주식으로 먹었다. '포'는 '쌀'이라는 뜻의 베트남어이다. 20세기 중엽 프랑스 사람들이 물러간 뒤 베트남은 남북으로 갈라졌다. 북부를 지배한 공산 세력이 모든 식당을 국영화하자, 식당 주인들은 탄압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가서 새로운 음식점을 차렸다. 이 바람에 북부 지역의 명물 음식이던 쌀국수가 베트남 남쪽에도 널리 퍼졌다. 1975년 공산 세력이 베트남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때 수많은 베트남 사람이 탈출해서 외국으로 갔으며, 현지에서 생활비를 벌고자 식당을 차렸다. 그로 인해 쌀국수는 세계적인 음식으로 유명해졌다. 오늘날 쌀국수는 재료에 따라 명칭을 세분해서 부르고 있다. 예를 들어 쌀국수에 쇠고리를 얹으면 '포보', 닭고기를 얹으면 '포가'라고 말한다. 이 밖에도 베트남 쌀국수는 만드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맛과 모양을 낸다. 요즘에는 영양소가 풍부하고 열량은 적어 건강 음식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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