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 초밥과 생선회의 역사
옛날 동남아시아 바닷가 사람들이 소금 뿌린 쌀밥으로 생선을 보존하던 방법이 7세기 무렵 일본에도 전해졌다. 일본인들은 생선 내장을 꺼내 버리고 그 자리에서 소금 섞은 쌀밥을 채운 다음 나무 상자에 넣고 무거운 돌로 눌러놓았다. 그러고는 한 달정도 지난 뒤에 꺼내어 생선만 골라 먹었다. 일본인들은 이 발효 생선을 '나레즈시'라고 불렀다. '숙성된 생선'이라는 뜻이다. 일본어 '스시'는 본래 '시큼한 맛'을 의미했지만, 나중에는 '생선 초밥'이라는 뜻으로 바뀌었다. 처음부터 쌀밥에 식초를 섞으면 발효 시간이 단축되지 않을까? 16세기 무렵 일본인들은 식초를 사용하여 자연 발효를 대신했고, 17세기에는 단맛 나는 식초로 버무린 초밥과 생선을 상자에 넣었다가 몇 시간 뒤 꺼내 먹는 방법도 찾아냈다. 이제 쌀밥도 버리지 않고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쌀밥을 생선 살로 덮어서 같이 먹으면 어떨까? 19세기 초 일본 에도(지금의 도쿄)에 살던 '하나야 요헤이'라는 상인이 초밥에 얇은 생선 한 조각을 붙여 팔았다. 니기리스시(주먹 초밥)는 한 입 크기로 먹기 좋은데다 식초에 절이지 않았으므로 생선 고유의 맛을 지닌 장점도 있었다. 살짝 비린내를 풍기는 단점은 고추냉이 섞은 간장에 찍어 먹는 방법으로 보완할 수 있었다. 에도에 사는 사람들은 직장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거나 목욕탕에 다녀오는 길에 노점에서 선 채로 생선 초밥을 즐겨 먹었다. 생선 초밥이 인기를 끌자 19세기 중엽에는 시내 여기저기에 생선 초밥을 파는 노점상이 경쟁적으로 생겨났다. 1939년, 일본 정부는 위생상의 이유로 노점을 일시에 폐쇄했다. 그 바람에 실내에서 생선 초밥을 파는 음식점이 대신 생겨났다. 이때부터 손님은 앉아서 먹고, 요리사는 서서 초밥을 만드는 풍경이 자리 잡게 되었다. 싱싱한 생선 살을 얇게 저며서 날로 먹는 생선회는, 일본의 경우 장군이 통치하는 막부 때인 14세기부터 일부 귀족들이 먹었다. 원래는 어부들이 갓 잡은 생선을 얇게 썰어 익히지 않고 먹는 즉석요리였지만, 16세기 무렵 식초에 절이는 방법이 나오면서 생선을 식초에 절인 뒤 잘게 썰어 회로 먹었다. 당시에는 간장이 없었기에 별다른 양념없이 생선 맛을 즐겼다. 생선회를 일본어로 사시미라고 하는데 '찌르다'라는 뜻의 '사스'와 생선 살을 의미하는 '미'가 합쳐진 말이다. '칼로 살을 찌름'이라는 명칭이 붙은 데에는 사연이 있다. 16세기 무렵 오사카의 한 성주가 손님을 위해 잔치를 벌였을 때, 요리사는 십여 가지 생선회를 상에 내놓았다. 이때 한 손님이 생선회 맛을 칭찬하면서 생선 이름을 물었다. 요리사는 설명하고 물러나면서 생각했다. '일일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뭘까?' 다음 잔칫상부터 요리사는 여러 종류의 생선을 접시에 담을 때 각각의 생선 지느러니마 아가미에 이름이 적힌 작은 깃발을 찔러 놓았다. 이후 점차 작은 깃발을 꽂는 풍습은 없어지고 사시미라는 이름만 남았다. 19세기 들어 간장이 보편적인 조미료로 사용되자 생선회는 일반 서민도 즐기는 요리가 되었다. 생선을 날로 먹는 것은 일본만의 음식 문화가 아니다. 하지만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엽까지 일본이 군사 강국으로 위세를 떨칠 때 스시와 사시미가 외국에 널리 알려졌다. 또한 조용히 먹으며 이야기하는 음식으로 여겨지면서 고급 사교 요리로 대우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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