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노예의 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경제학자입니다. 오스트리아학파의 일원으로 자유 시장 경제에 대한 옹호와 사회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널리 알려졌고,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장 자유주의 해설서이자 20세기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정치 경제 담론에 큰 영향을 준 <노예의 길>을 집필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독일과 이탈리와 같은 파시즘 국가가 패망한 이후에도 사회 보장 제도와 노동 조건 개선을 원하는 여론에 힘입어 정부의 시장 개입이라는 사회주의적 정책 기조는 계속 됐습니다. 하이에크는 이러한 점진적인 자유주의 국가들의 사회주의화 행보가 나치가 독일을 전체주의로 이끈 과정과 일치한다고 주장하며 <노예의 길>을 집필했습니다. 1944년 <노예의 길>이 출간되던 당시는 자유주의와 시장 경제 진영의 실패로 인해 사회주의와 계획 경제 진영의 장점이 부각되던 시기였습니다. 자유주의에서의 개인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에 반해 사회주의는 '공동선'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국가가 개인들의 행동을 통제할 권리는 가집니다. 공동선이란 전 국민의 효용 극대화가 될 수도 있고, 평등한 사회가 될 수도 있으며, 사회 구성원들을 위한 어떤 목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산주의에서의 공동선은 '경제적 평등'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 독일 파시즘에서의 공동선은 '독일의 영광'이었습니다. 자유주의에 입각한 시장 경제에서 경제 주체들은 자유로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시장에 참여합니다. 모든 경제 참여자로 이루어진 집단 지성이 실시간으로 시장을 확인하고 그에 반응하는 구조인 것입니다. 이러한 집단 지성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즉시 반응하고 결정 내릴 수 있습니다. 지켜보는 눈이 많고 자신의 이익이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계획 경제 체제는 국가가 시장을 확인하고, 시장에 반응하며, 시장을 조정합니다. 이러한 경제 체제가 효율적이기 위해서는 의사 결정의 독점권을 가진 국가가 항상 변화하는 시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응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이에크는 "국가가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계획 경제 체제는 효율적일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져도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순간, 시장 참여자들 간의 경쟁을 저해하거나 가격을 왜곡시킬 수 밖에 없습니다. 이때 국가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돈이 없어서 식량을 살 수 없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빵 시장에 가격 상한제를 도입하면 빵은 시장에서 원하는 양보다 적게 공급될 것입니다. 빵의 공급이 적으면 사람들은 원하는 만큼 빵을 사지 못할 것이고, 어떤 형식으로든 부족한 빵을 나눌 방법이 필요해집니다. 그리고 국가는 빵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빵 샌산자들에게 생산을 명령하게 됩니다. 물론 원자재 또한 부족한 빵 생산에 맞추어져 있어 수급이 원활하기 못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한 원자재에도 가격 제한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듯 경제의 자원 배분과 생산 요소를 국가가 통제하고 명령하기 시작하면 자유가 박탈 당하고 비효율이 발생합니다.
하이에크는 이것이 바로 독일 사회주의 정책이 파시즘으로 이어진 이유라고 말합니다. 나치가 집권한 독일은 아우토반 건설 등 사회 간접 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냈고, 이는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습니다. 상승하는 물가를 통제하기 위해 독일 정부는 가격 상한제를 실시했고, 이는 공급 부족으로 이어집니다. 자연스럽게 배급제가 실시 됐으며, 부족한 공급을 메우기 위해 대기업 중심으로 생산 계획이 하달됐고, 이들 대기업을 위한 노동자들이 배치됐습니다. 그리고 반발을 잠재우고 계획 경제의 비효율을 감추기 위해 선전 선동과 반대파 숙청이 이루어졌고, 이는 개인을 완전히 수단 취급하는 전체주의 정부의 대두로 이어집니다. 당시 많은 사람은 파시즘이 자유 시장 경제의 실패와 사회주의 계획 경제의 극단성을 자양분 삼아 대안으로서 탄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득세하던 온건 사회주의 지지자들은 정부가 비대해져도 민주적 절차로 이를 견제할 수 있으며, 절대 히틀러와 같은 폭군이 집권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하이에크는 국가의 경제 개입은 필연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독재 국가를 탄생시키지 때문에 사회주의가 나치와 같은 파시즘으로 변모하는 것이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절충안으로 파시즘이 탄생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국가를 항상 지옥으로 만들어온 것은 인간이 그것을 천국으로 만들려고 애쓴 결과였다"라는 독일 시인의 풍자를 인용하며 사회주의자들을 꼬집었습니다.
하이에크의 사상은 1980년대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미국 레이건 행정부와 영국의 대처 행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쳐 1970년대 시작된 스태그플레이션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습니다. 케인스학파 대신 하이에크로부터 출발할 신자유주의가 주류가 된 것입니다. 특히 마가렛 대처는 <노예의 길>을 보강하여 출간한 하이에크의 <자유헌정론>을 지지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1975년 영국 보수당 총재가 된 대처는 당원들 앞에서 하이에크의 <자유헌정론>을 탁자에 쾅 하고 내려놓고는 "이것이, 우리가 믿는 바입니다"라고 공언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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