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너 오스트롬 <공유의 비극을 넘어>
엘리너 오스트롬은 미국의 정치학자인 그는 평생 개인의 무분별한 이익 추구가 공동체 전체를 파면시키는 '공유지의 비극'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에 헌신했습니다. 시장이나 정부 권력이 아닌 공동체 자율 규약을 통한 제3의 길을 제시했으며, 이는 환경 오염과 기후 변화 등의 문제를 겪던 세계 각국의 관료와 학자들에게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여성 최초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됐습니다.
방목을 위한 목초지, 바다의 어군 그리고 무엇보다도 깨끗한 지구는 대표적인 공유재입니다. 공유재란 수량이 한정돼 있어 서로 경합하게 되면서도 소유권은 주장할 수 없는 자원을 말합니다. 유한한 자원의 무한한 추구가 결국 모두의 파멸을 불러오는 것을 알면서도, 자연 상태의 사람들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벌입니다. 이는 결코 인간이 비이성적인 존재라서가 아닙니다. 다른 모두가 공유재를 아껴 쓸 때, 내가 몽땅 쓸어 담는다면 최대의 이익을 누릴 수 있으며 이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이를 알기에 이성적 인간은 공유재 앞에서 '모두의 모두에 대한 배신'을 벌이는 것입니다. 이런 각자도생의 세계를 통제하기 위해 사회는 두 가지 기구를 출범시킵니다. 하나는 정부입니다. 정부란, 모든 폭력에 대해 독점적 권한을 행사하는 기구입니다. 정부는 국민에게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개인의 공동체의 이익에 기여하도록 강제합니다. 또 다른 기구는 기업입니다. 기업은 여러 개인이 협력했을 때 더 많은 이익을 누릴 수 있음을 근거로 계약을 통해 사람들이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만듭니다. 개인을 통제하고 질서를 만드는 정부와 기업의 공통점이란 외부의 권위에 의존하며, 하향식으로 명령하고, 힘을 행사하는 기구라는 점입니다. 이런 기구들은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하지만, 모든 문제의 답이 돼주지는 못합니다. 기후 변화와 같은 공유지의 비극 문제가 그 한 예시입니다. 여기서 오스트롬은 하향식 권위 기구만이 유일한 해법은 아니며, 상향식으로 의사 결정이 진행되는, 공동체 구성원들 자율의 질서 역시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정부와 국가 권력의 개입 없이 공유재를 관리하려던 시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있어 왔습니다. 스위스의 방목장과 네팔의 관개 시설, 마사이족의 목초지, 터키의 공동 어장 등이 그 예입니다. 오스트롬은 정부 개입이나 사유화 없이도 공유재가 관리되는 예시를 찾아 전 세계를 탐사했고, 수많은 성공과 실패 사례를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공동체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공유재를 관리하는 여덟 가지 성공 비결, 즉 '디자인 원칙'을 정립했습니다. 디자인 원칙의 8개 비결을 좀 더 기억하기 쉽게 세 가지로 간추려 보자면, 첫 번째가 분명한 경계입니다. 개인이 공유재를 사유할 수 없더라도, 공동체 전체에는 배타적으로 귀속돼야 합니다. 이는 당연한 것으로, 아무리 공동체 규범이 이상적으로 준수돼도 외부인이 마음대로 공유재를 쓸어 담을 수 있다면 질서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자치권입니다. 지역 특색을 존중하지 않은 천편일률적 해결 방법은 통하지 않습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직접 규칙을 정하고, 이를 집행 및 감시하며 분쟁을 해결할 장치가 마련돼야 합니다. 그리고 이 자치제의 효력을 중앙 정부가 존중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치 공동체는 더 큰 공동체에 겹겹이 소속돼야 합니다. 문제의 난이도가 자치 공동체 수준을 넘어설 때, 상위 공동체와의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오스트롬의 연구는 경제학보다 정치학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세계 각국의 경제학자들과 법 관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오스트롬은 공유재에 대한 개인의 탐욕이 필연적으로 공동체의 파멸을 불러온다는 경제학계의 정설을 타파했습니다. 또 파국을 막기 위한 해결 방안으로는 정부 권력의 개입이나 사유화만이 존재한다는 종래의 입장을 깨고 제3의 길이 있음을 밝혔습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공동체 자율의 공유재 관리를 위해 어떤 규칙이 수립돼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원칙까지 정립했습니다. 오스트롬의 연구는 공유재 거버넌스를 연구하고, 설립해야 하는 이들에게 영향을 줬습니다. 디자인 원칙은 제도를 통해 경제를 설명하려는 학자들은 물론 당장 사회 제도를 수립해야 하는 관료 실무자들에게도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공유의 비극을 넘어>에 소개된 디자인 원칙이 가장 유의미할 분야는 당연 기후 변화일 것입니다. 오스트롬은 범세계적 기구의 출범에만 의지하는 정치 외교적 해결책이나 탄소 배출권과 같이 사회적 손실의 사유화만 추구하는 경제적 해법으로는 밝은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경제학자들이 정설로 받아들이는 종래의 이론은 너무나 시야가 좁고 비현실적이라는 것입니다. 반면 오스트롬은 기후 변화에 대한 다원적인 접근법을 제시합니다. 범세계적 기구의 천편일률적인 통제를 기다리는 대신, 지역 공동체 수준에서의 환경 문제 해결이 먼저 시작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장 지대나 도심 지역에서 주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배출 가스를 규제하고, 장기적 경제 효익을 위해 재생 에너지로 전환하거나 단열재 설치를 통해 에너지 효율을 높임으로써 즉각적이며 현실적인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이런 지역 공동체 규약이 사회 전반에 신뢰를 불어넣고, 더 큰 규모로 확대돼 국가적 혹은 전 지구적 합의의 기초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스트롬이 보기에 공유 자원의 분배처럼 복합적인 문제는 이론에 기반한 천편일률적 해결책 대신 현장의 맥락을 고려한 해결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정치과학과 미시 경제학 이론을 탐구하는 대신 전 세계 각지를 직접 탐사함으로써 연구실이 아닌 현장에서 디자인 원칙을 발견해 냈습니다. 이는 이론이 먼저, 응용이 그다음인 종래의 정책 제안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훗날 법학자 리앤 펜넬은 그의 연구 철학에 빗대어 '오스트롬의 법칙'을 소개합니다. "현실에서 통하는 방법이 이론에서도 통하기 마련이다"라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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