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경제학 교과서, 존 스튜어트 밀 <정치경제학 원리>
존 스튜어트 밀은 영국의 사회학자, 철학자, 정치경제학자입니다. 경험주의 인식론과 공리주의 윤리학을 연구했습니다. 35년간 영국 동인도회사에서 근무했고, 자유주의에 기반한 정치경제 사상을 가지고 정치에도 참여해 하원의원을 지냈습니다. 세 살 때부터 그리스어를 배웠고 열세 살 때 정치 경제학 공부를 시작해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저서를 두루 학습했다고 합니다.
<정치경제학 원리>가 쓰인 19세기 중반까지 활동한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토머스 맬서스, 카를 마르크스와 같은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경제학자이자 철학자, 정치학자였습니다. 이들은 사유를 기반으로 경제에 대해 고민했고, 그러한 사유를 공유했습니다. 그때까지 경제학과 철학의 경계는 모호했습니다. 당시는 애덤 스미스를 계승한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산업 혁명 이후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수많은 사회 문제가 야기되면서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18세기 중엽부터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달하던 자본주의는 산업 혁명을 맞아 확립되었지만, 또 그 산업 혁명의 결과물로 인해 비판받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마르크스와 같이 자본주의가 내적 모순으로 인해 붕괴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대가 경제학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경제학은 계속해서 사상적으로 발전해 나아갔습니다. 18세기부터 계속된 유럽 내 국가 갈등은 갈수록 심해져 국가의 운명을 건 전쟁들로 이어졌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국부 증대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했습니다. 자연스럽게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들은 국가의 부와 경쟁력 그리고 생산과 소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그의 대부이자 스승인 제러미 벤담으로부터 공리주의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는 공리주의 관점에서 애덤 스미스로부터 내려오던 '국부란 무엇인가', '시장을 통해 국부를 증진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자본주의가 야기한 수많은 사회 문제에도 눈뜨는데, 특히 배우자이자 여성 운동가인 해리엇 테일러의 영향을 받아 여성과 노동 계급이 마주한 불평등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밀은 고전학파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통합하고 자본주의를 점진적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사회개량주의를 더해 <정치경제학 원리>를 집필할 수 있었습니다.
1919년 앨프리드 마셜의 <경제학 원리>로 대체될 때까지 <정치경제학 원리>는 옥스퍼드 대학의 경제학 교과서로 쓰였습니다. <정치경제학 원리>는 경제학 교과서임에도 불구하고 수식과 이론으로 무장한 현대 경제학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는 매우 생소합니다. 막상 읽어보면 철학 서적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답니다. 이 책은 이론과 실증 분석이 아닌 사유를 통한 논의와 주장이 주를 이루는 철학서처럼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이 출간되기 전의 경제학자들은 시장을 믿는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밀은 달랐습니다. 고전파 경제학을 계승하여 자유주의적 관점을 견지하는 동시에 사회주의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분배를 개선하고 사회의 점진적 개혁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밀은 이 책에서 고전학파인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통합합니다. 리카도는 애덤 스미스와 함께 영국 고전파의 이론 체계를 완성한 영국의 경제학자입니다. 그는 애덤 스미스의 절대 우위론에서 더 나아가, 한쪽이 모든 면에서 절대 우위를 지닌다 해도 상대적으로 더 잘할 수 있는 생산에 집중하면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비교 우위론을 주장합니다. 밀이 말하는 사회 개량주의는 사실상 리카도의 주장을 도덕적으로 수정, 발전시킨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생산과 분배의 방식'을 재검토하여 자본주의가 가진 문제점과 모순을 '수정'하고 '개량'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러한 개량은 '인간의 노력'으로 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노력이란 바로 '도덕 교육'이라고 말합니다.
밀의 <정치경제학 원리>는 19세기 후반 영국 경제학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물론 19세기 중반에 쓰였기 때문에 오류가 많아 고전 경제학의 오류를 모두 모아 편찬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밀은 절충적 경제학자로 불릴 만큼 고전파, 신고전파, 개량적 사회주의 등을 모두 취합하여 이 책에 담았습니다. 자유주의를 옹호하면서도 자본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유방임을 제한하고 정부의 개입을 찬성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책 자체에 많은 모순과 논리적 결함이 포함되었지만 이는 당시 시대적 상황에 따른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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