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메이너드 케인스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 이론> 정부, 시장에 개입하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현대 거시 경제학의 창시자입니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 기간에 그는 고전 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하던 현상들을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 이론>에서 풀어냈습니다. 케인스의 영향으로 이후 국가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이 강조됐으며, 그의 이론을 보강/계승하는 경제학파를 케인스학파라고 합니다.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 이론>이 쓰이던 당시에는 공급이 그 자체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이론이 대세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생산할 때, 기업은 차를 만드는 데 필요한 철강, 타이어, 유리 등을 구매합니다. 또 철강, 타이어, 유리 등을 생산하는 기업도 마찬가지로 이를 만들기 위한 재료를 구매합니다. 공급이 곧 수요라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이는 언뜻 봤을 때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 커다란 함의를 지닙니다. 공급이 곧 수요라면, 공급이 아무리 늘어나도 수요가 부족할 일은 없다는 뜻입니다. 간단히 말해, 만들어 낸 모든 물건이 다 팔려 나간다는 의미입니다. 악성 재고에 대한 걱정이 없다면 모든 가게는 가능한 한 생산 역량을 100%로 발휘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업은 최대의 산출량을 찍어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노동자를 고용할 것이며, 노동자들은 일할 의사만 있다면 모두 취업될 것입니다. 뉴스에서 실업률을 논할 때 등장하는 '완전 고용'이란 이런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 이론>이 쓰인 당시의 현실은 대세로 받아들여지던 이론과 사뭇 달랐습니다. 대공황이 한참이던 1932년 미국의 실업률은 25%를 육박했습니다. 네 가정 중 한 가정은 임금 소득이 없다는 뜻이죠. 지금과는 달리 당시에는 맞벌이라는 개념이 희박해서, 가장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온 가족이 굶어야 했습니다. 이런 고난은 미국뿐 아니라 영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케인스는 전 세계적인 불황을 보며 의문을 품었습니다. 정말로 공급하는 대로 수요가 발생한다면, 이 실업률과 경제 불황은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한단 말인가? 지금의 세계 경제는 10년 전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시기와 비교해서 무역이 급감하지도, 기술이 갑자기 실전되지도 않았습니다. 커다란 천재지변이나 전쟁으로 공장들이 파괴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즉, 경제의 '생산 역량'은 감소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생산량'은 아주 많이 그것도 갑자기 감소해버렸습니다. 생산 역량이 그대로인데 왜 생산량이 줄었을까? 고전 경제학자들은 튼튼하던 경제가 갑자기 골골대는 이유로 정책을 탓했습니다. 최저 임금제와 노조권의 보장, 무역 규제와 같은 정부 개입이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고전 경제학자들은 정부란 반드시 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경제 현상을 나라 경제 전체의 관점에서 파악하려는 노력을 크게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또 누구의 간섭도 없이 시장의 경쟁을 통해 자율적으로 경제를 운영할 때 최선의 겨로가가 도출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케인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케인스는 거시 경제적으로 국가의 역할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필요에 따라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지만 케인즈는 결코 자유 시장 경제가 틀렸다고 말하려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국가의 역할은 자유 시장 경제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잠시 균형에서 이탈한 경제를 균형점으로 빠르게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케인즈는 고전 경제학이라는 기존의 지도가 담지 못하는 다른 영역이 있다는 것을 파악했을 뿐입니다.
케인스는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 이론>에서 시장이 고장 날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대공황이란 "경제 주기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라고 여긴 자유 시장의 불안정함을 비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케인스가 제기한 문제는 오히려 경제 불황이 수년간 꼼짝없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호황으로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케인스는 고전 경제학 논리의 결론이 아닌 전제 조건에 눈을 돌립니다. 고전 경제학자들은 시장 경제가 기능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성립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 임금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하고, 둘째 금리가 유연하게 등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요인이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시장은 최대 역량을 발휘하는 지점, 즉 균형을 향해 움직인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케인스는 두 조건 모두 참이 아닐 수 있는 예외의 경우가 있다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첫 번째로 그는 임금이 균형을 향해 움직이지 않는 사례를 제시합니다. 고전 경제학에 따르면 경기 불황이 닥쳤을 때 기업은 임금을 줄입니다. 임금이 내려가면 기업의 이익이 늘고, 이에 고무된 기업은 생산을 늘립니다. 이렇게 생산이 늘면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해 임금을 늘리게 됩니다. 임금이 늘면 다시 이익이 줄며 생산이 감소합니다. 이렇게 진자는 불황과 호황을 왔다 갔다 하며,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면 그 반대 방향으로 당기는 힘도 강해집니다. 이처럼 경기는 진동하며, 과도한 침체와 과열을 스스로 방지한다는 것이 기존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케인스는 임금이라는 진자의 추가 "불황에 달라붙는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불황기에 임금이 충분히 떨어지지 못하면, 진자는 '회복의 메커니즘' 없이 대침체의 방향으로 쏠린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명목 임금은 떨어져도 실질 임금이 떨어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는 곧 소비자이기도 합니다. 소득이 줄어든 노동자는 지출을 줄일 것이고, 물가는 떨어질 것입니다. 낮아진 물가는 곧 기업 이익의 하락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기업이 지불하는 임금의 액수는 줄었으나, 소득이 줄어들어 버린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아 기업 재정 또한 악화되면서 기업이 느끼는 임금의 부담은 줄지 않거나 오히려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인건비를 절감했는데도 이익이 늘지 않으면 기업가는 설비 투자를 줄입니다. 그러면 생산량을 더 줄고, 공장이 폐쇄되며, 일자리는 더 부족해집니다. 이처럼 경제는 가만히 두면 균형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케인스는 두 번째 조건, 즉 금리가 언제나 유연하게 등락해야 한다는 전제도 현실과 맞지 않음을 밝힙니다. 고전 경제학에서의 금리도 진자 운동을 한다. 경기가 위축되면 기업들이 돈을 빌리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면 쌓인 돈은 많은데 투자처가 없으니 금리, 즉 '돈의 가격'이 낮아집니다. 이때 이자율이 낮아지면 기업들은 마음을 바꿔 투자하려 합니다. 다시 투자가 활성화되면 돈의 수요가 늘며 다시 금리는 오르고 진자가 균형점을 향해 되돌아가는 것이 고전 경제학의 논리입니다. 고전 경제학은 불경기에 금리가 내려가면 기업들이 투자를 늘릴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그러나 실제 사람들은 불경기에 투자보다 현금 보유를 선호합니다. 물론 이 같은 현금 보유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당장 투자하면 얻을 수 있었을 수익이 바로 그 대가(기대비용)입니다. 고전 경제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돈의 수요가 줄면 금리도 따라 내려와야 하고, 이는 다시 기업들이 대출을 받아 공장을 확장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금리, 즉 현금 보유의 기회비용이 너무 낮아지면 사람들은 투자하지 않습니다. 기업을 위한 투자금으로, 설비 확장과 고용 확대를 촉진해야 할 돈이 그대로 잠들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유동성 함정'이라고 부릅니다. 금리가 아무리 낮아도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진자의 추는 불황을 가리킨 채 멈춥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약 케인스가 고전 경제학의 결함을 비판하는 데 그쳤다면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 이론>을 '케인스 혁명의 시작'이라고 평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경제 대공황의 해결책으로 정부가 수요와 투자를 견인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부가 시장 경제에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강력한 반대에 직면했지만, 케인스가 보기에 시장은 자기 조정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시장 경제의 작동을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신뢰'였습니다. 케인스는 시장 참여자들이 시장의 자기 조정 능력을 불신하게 되면, 경기 불황으로 인해 시장이 가진 미래 경기에 대한 기대가 하향 조정돼 이후 더 큰 경기 불황이 올 수 있다는 부정적 기대가 시장에 팽배할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이러한 시장의 미래에 대한 부정적 기대감이 대공황을 불러온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정부가 이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부가 잉여 농산물을 사들이고, 수주가 끊긴 건설 기업들에 대규모 토목 공사를 발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돈줄이 트인 기업들이 다시 고용과 임금을 늘리고, 소득이 는 노동자들은 지갑을 열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시장 참여자들이 경제 회복에 대한 신뢰를 가져야만 대공황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고, 그제야 비로소 고전 경제학자들이 말한 자유 시장의 진자가 작동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케인스는 "정부 기능의 확장이야말로 자본주의 전체가 붕괴되는 것을 막는 유일한 현실적 방법이자, 개인의 주도권이 성공적으로 발현되게 하는 조건"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부의 역할은 자유 시장과 양립 가능하며, 더 나아가 자본주의를 더 튼튼하게 할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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