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먼 민스키 <불안정한 경제 안정화시키기>
하이먼 민스키는 미국의 포스트 케인스학파 경제학자입니다. 워싱턴 대학 교수, 바드 대학 레비경제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금융 시스템의 변동성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금융 위기의 취약성과 특징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1980년대 금융 규제 완화에 반대하고, 중앙은행의 금융 안정 역할을 강조하여 정부의 금융 시장에 대한 개입을 지지해 포스트 케인스학파로 분류됩니다.
하이먼 민스키가 내놓은 정책적 대응은 다소 과격하지만, 금융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된 현재 경제 체제의 문제를 속시원하게 짚어줍니다. 글이 다소 장황하여 읽기 어려울 수 있지만, 훌륭한 통찰과 탄탄한 분석을 바탕으로 쓰여 금융이 유발하는 불확실성 속에 사는 우리에게 많은 고민거리와 충분히 가치 있는 해결책을 던져줍니다. <불안정한 경제 안정화시키기>의 초반부 내용은 평이합니다.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행태는 어떠한지, 정책은 어떻게 작용하는지와 같은 일반적인 경제 시스템 원리를 먼저 설명합니다. 뒤이어 1975년 경기 침체 징조가 나타났을 때,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고 중앙은행이 최종 대부자의 역할을 강조하는 선제적 노력으로, 당시 경기 침체가 더 심각한 경기 불황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았던 과정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과 설명을 토대로 금융 불안정성 가설을 주장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성공적인 경제 성장을 경험했습니다. 경제가 호황을 맞자 기업의 이윤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기업가들의 수익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습니다. 사업가들의 낙관론은 투자 증대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투자 증대는 자연스럽게 부채의 증가를 유발합니다. 사업가들 사이에 팽배한 낙관전 기대는 투자자와 투기자들에게 전염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기업은 돈을 더 빌리기 쉬워지고 계속해서 부채가 증가합니다. 금융이 발달해 있다면 부채의 증가 속도는 더욱 빨라집니다. 그러나 기대 수익이 언제까지 계속해서 오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호황이 지속돼 생산량이 많아지면 인플레이션이 낮아져 물건 가격은 오르기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기업들은 부채가 누적돼 이자 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에 기대 수익이 낮아집니다. 이 때 금융이 충분히 발달한 사회에서는 기업들의 비즈니스가 유지될 수 있도록 현금을 계속 조달해 줍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악화되는 재무 건전성에도 불구하고 생존할 수 있지만, 문제는 이러한 금융을 통해 작위적으로 이루어진 생존은 상황을 더 악화시킨 후 끝이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기업에는 더 이상 채무를 감당할 수 없는 시점이 찾아옵니다. 특히 경기가 나빠지기 시작할 때 올 확률이 높습니다. 경기가 나빠지면 기업들의 기대 수익이 낮아져 증가한 부채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채권자들은 기대 수익이 낮아진 기업들에 돈을 빌려주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미 많은 돈을 빌린 기업이라면 한꺼번에 채무를 갚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결국 채무 이행을 위해 여러 기업이 자산을 동시에 팔면 자산 가격은 폭락하고 우리는 금융 위기를 겪습니다. 민스키의 '금융 불안정성 가설'이란 자산 가격이 폭락하는 상황에서는 부실한 자산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재무적으로 튼튼한 기업들마저도 연쇄적으로 도산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에 금융 시스템이 붕괴하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1998년 금융 위기 때 폴 매컬리가 '민스키 모먼트'라고 설명한 상황, 즉 경기 흐름이 부정적으로 돌아서면 기대 수익이 낮아져서 채무자가 과도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건전한 자산까지 팔아야 하게 만드는 바로 그 임계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금융이 발전한 상황에서 우리는 이러한 불안정성과 금융 위기의 위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에 대해 민스키는 "본래의 케인스주의로 돌아가자"라고 주장하며 자신만의 해답을 내놓습니다. 사실 <불안정한 경제 안정화시키기>에서는 '본래의 케인스주의'에 대한 설명이 장황하지만 미비하기 때문에 일관된 주장을 하고 있는 민스키의 또 다른 저서인 <케인스 혁명 다시 읽기>를 참고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민스키가 생각하는 본래의 케인스주의에 입각한 정책이란, 자본의 구조 조정에 대한 직접적이고도 적극적인 정부 개입 그리고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최종 대부자 역할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큰 정부, 큰 중앙은행이 아닌 명확한 공리적 목적을 가지고 전 경제적인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민스키는 자본의 구조 조정 과정을 회피하고 시장에 맡기자고 주장하는 오스트리아학파의 주장에 반대합니다. 이는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하고, 정의에 어긋나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부채를 과도하게 늘리는 것을 가능케 해 경제 위기에 대한 책임있는 금융 기관을 망하게 하는 방안에도 반대합니다. 이는 대중 정서에는 맞을 수 있으나 공멸을 이끌어내는 무책임한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불안정한 경제 안정화시키기>를 읽는 독자들은 약간 당황합니다. 장황한 설명에 반해 결론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개혁을 위한 어젠다'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어젠다가 명확하게 정리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민스키의 주장은 나를 포함한 여러 전문가의 해석을 더해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민스키는 결국 케인스가 주장한 '투자의 사회화'를 주장했습니다. 투자의 사회화란 시장 실패나 다른 여러 이유로 시장이 균형에서 벗어났을 때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 완전 경제가 균형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을 뜻합니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침체할 때, 정부가 투자를 통해 수요를 창출해서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측면만을 논의합니다. 그러나 투자의 사회화에는 경기가 과열돼 균형보다 더 많은 공급이 일어날 때 정부가 개입하여 시장을 안정시키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민스키는 금융을 주시한 경제학자입니다. 1900년대의 많은 경제학자는 금융과 투자의 실무적인 측면에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경제학은 금융과 투자를 공부하는 학문이 아닌 희소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시장 참여자 개인의 수준과 경제 전체의 수준에서 고민하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민스키는 금융 정책 기관, 중앙은행 그리고 월가의 금융 기관과 가깝게 교류하며 금융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갖습니다. 특히 워싱턴 대학에 재직할 때 만든 마크트웨인 은행과의 긴밀하고도 오래된 관계는 그에게 금융 기관의 관점에서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금융 위기를 바라볼 기반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민스키는 케인스, 피셔, 미하우 칼레츠키, 슘페터 등 저명한 경제학자들의 주장을 체득하고 여기에 금융 현장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적용하여 다양한 글을 써냈습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쓰인 <불안정한 경제 안정화시키기>는 인류가 금융 위기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를 제시합니다. 심지어 이 책은 1986년에 쓰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민스키의 통찰력은 놀랍기만 합니다. 물론 금융 산업이 경제 생태계에 불안정성을 만들어내는 방법이 많이 바뀌지 않았음도 알 수 있습니다. 민스키 모먼트라는 단어를 만든 핌코의 폴 매컬리는 2008년, 이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합니다. "민스키의 책은 그 어느 때보바도 지금 가치가 있다. 헤지, 투기 그리고 폰지 단위로 완성된 그의 금융 불안정성 가설은 지난 반백년 동안 미국의 부동산과 부동산 담보 대출 시장에 완벽하게 적용됐다." 비록 살아생전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민스키와 그의 저서는 금융 산업과 금융 기관에 의한 경제의 불안정성이 지속되는 한, 그리고 우리가 금융 위기를 걱정하는 한, 반복적으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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