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자와 히로후미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
우자와 히로후미는 일본의 대표적인 경제학자입니다. 도쿄 대학 명예 교수이자 일본학사원 회원, 도시샤 대학 사회적 공통자본 연구센터장이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그를 발탁한 케네스 애로와 시카고 대학 재직 시설 그의 연구원이던 조지프 스티글리츠, 조지 애컬로프 모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신고전 경제학을 배운 그도 당대 일본에서 노벨경제학상에 가장 근접한 사람으로 여겨졌으나, 1968년 돌연 일본으로 귀국하여 종래의 경제학이 외면하던 사회 문제를 지적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1960년대,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화된 과거를 뒤로하고 한국 전쟁의 특수와 공업화에 힘입어 엄청난 속도로 경제 성장했습니다. 일본 경제의 눈부신 성장을 대변하는 것이 일본의 자동차 기업이었다면, 일본인의 부를 상징하는 것은 자동차였습니다. 자동차는 산업 혁명을 대표하는 문명의 이기이자 어디로든 떠날 수 있음을 상기시키는 자유의 상징이었습니다. 가정에 자동차가 널리 보급되면서 세상도 변해갔습니다. 철저히 보행자를 위해 설계된 보도는 이제 아스팔트로 덮여 자동차를 위한 길이 되었고, 깎아지른 건물 벽과 고속으로 종횡무진하는 자동차들 사이로 사람들은 길가에 붙어 움츠린 채 걸었습니다. 미국에서 귀국한 우자와는 이러한 사회를 목격했습니다. 스물여덟 젊은 나이에 스탠퍼드 대학의 케네스 애로 교수에게 발탁돼 미국으로 건너갔고, 서른여섯이라는 나이에 세계 경제학의 아성이던 시카고 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가 12년 만에 일본에 귀국해 목격한 것은 더는 사람이 아닌 온전히 자동차를 위한 도시로 변해버린 도쿄였습니다. 젊은 나이에 탄탄대로를 걸으며 노벨경제학상 후보로 평가받던 우자와는 평생 배운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뒤로하고 자유 시장 경제의 결점이 가져온 사회적 문제 해결에 몰두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 바로 자동차였습니다. 그가 보기에 자동차 운전자를 찻값과 연료비 등 시장 경제에서 자신이 부담해야 할 비용만을 지불할 뿐, 주행 중 발생하는 환경 파괴와 소음 공해, 안전 위협과 같은 대가는 전혀 치르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운전자들이 치르지 않은 비용은 고스란히 사회적 비용이 됐으며, 특히 저소득층과 교통약자들에게 불공평하게 많이 전가됐습니다. 신고전 경제학을 공부한 우자와는 자유 시장 경제의 결점에 대해 스스로 잘 알고 있었으며, 이 결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예시가 바로 자동차였습니다. 그리고 자동차가 시장 경제의 맹점을 이용해 사회적 비용을 만들어내는 것을 고발하기 위해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을 집필했습니다.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은 두께가 얇아 빠르게 읽을 수 있지만 내용은 매우 진지하고 유의미합니다. '자동차'라는 상징을 통해 시장 경제의 불평등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이 책이 쓰인 1970년대보다 오늘날 더 많은 시사점을 주는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동차가 개인의 삶에 끼치는 영향은 엄청납니다. 자동차가 있어 사람들은 더 넓은 생활권을 누리고 다양한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또 운전 자체를 큰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이도 있습니다. 이 책에서 우자와는 사람들이 자동차를 구매하고, 운전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동차를 운전할 때 발생하는 여러 손실을 운전자가 아닌 사회 전체가 부담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자동차가 야기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회적 손실은 환경 오염입니다. 당시 자동차는 심각한 수준의 유독 가스를 내뿜었는데, 환경 규제가 미약했기 때문입니다. 오염된 도시의 대기는 운전자가 아닌 그 주변 사람들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에서 자동차가 일으키는 사회적 비용의 대표적 예시입니다. 환경 오염보다 더 심각한 손해를 끼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간과하는 문제가 있는데, 바로 교통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입니다. 우자와는 자신의 경험을 빌려 인명 사고의 심각성을 처음 언급합니다. 그가 사는 곳 근처에서 한 초등학생이 차에 치였는데, 아이는 차와 외벽에 끼어 출혈이 심각해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사망합니다. 며칠간은 사람들이 사고 자리에 꽃을 두며 추모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는 다시 자동차가 난폭하게 경적을 울리며 사람들을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의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는 2만 명에 달했으며, 이를 위한 응급 안전망 구축과 보행자 보호 설비의 설치 그리고 보행자가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도로 건설은 사회 전체가 부담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두 문제만큼이나 우자와가 강조하려고 했던 점은 바로 자동차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입니다. 자동차가 늘어날수록 빈부 격차가 커진다는 것입니다. 도로를 건설할 때, 도시의 설계자들은 최소한의 비용만을 부담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주차장과 도로는 땅값이 낮은 저소득층 거주 구역에 짓게 되고, 이 탓에 사회적 취약 계층의 거주 구역에는 자동차가 고속으로 통과하고, 하늘은 고가도로에 의해 가려집니다. 이는 자동차를 소유, 유지하기 힘든 저소득층을 실질적으로 점점 더 곤궁하게 만듭니다. 우자와는 자동차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은 자동차 운전자가 아닌 사회 전체가 치르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다방면으로 발생하는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을 운전자들이 온전히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에서 제시하는 가장 간단한 해법은 운전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얼마의 세금을 부과해야 공정한가입니다. 결국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을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세금도 계산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에 대한 기존 연구들은 비용 편익 분석을 통해 계산했습니다. 자동차가 발생시키는 사회적 손실을 모두 돈으로 환산하여 측정하는 것입니다. 1970년 일본 운수성은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을 집계한 연구에서, 교통사고 피해자가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면 평생 벌어들였을 연봉과 사고로 파괴된 재산 손실을 집계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교통경찰 유지비, 육교 건설비와 같은 안전 투자 금액을 더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동차가 점점 늘어나고 도로가 혼잡해지면서 생기는 손실도 더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측정 기준에 대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운수성의 집계에 반발한 일본 자동차공업협회는 운전자가 보험료의 형태도 사고 비용을 직접 부담하고 있으며, 육교와 어린이 놀이터 건설 비용까지 운전자가 부담하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자동차공업협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은 한 대당 7,000엔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앞선 연구에서 대기 오염에 대한 비용은 집계되지 않았는데,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이를 포함하면 18만 엔이라고 추산했습니다. 연구자의 집계 기준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서 추산 금액이 극단적으로 오락가락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채택해야 할까요? 우자와는 국가가 물, 공기와 같은 것들은 사유 재산으로 인정하지 않고 공공재로 관리하는 것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그는 도시의 삶에 있어 교통약자들이 인간적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환경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 및 설비 투자 비용이 자동차 운전자들이 부담해야 할 응당한 대가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차도와 완전히 분리돼 보행자 안전을 보장하는 보도, 육교 대신 차도가 움푹 파이는 식의 설계 그리고 공해와 위험을 현실적 수준에서 주거 공간과 차단하는 완충 지대의 설치 등의 비용이 자동차 운전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우자와의 계산에 따르면 이는 자동차 한 대당 1,200만 엔입니다. 우자와는 교통사고 사망자의 생명에 값을 매기려 들고, 교통약자의 불편을 외면하는 종래의 계산 방식을 거부했습니다. 그에게 자동차가 침해하는 시민적 자유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응당 보상받아야 할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도시의 풍경이 바뀌어야 하고, 여기에 필요한 재원이야말로 운전자들이 부담해야 할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이라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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